주인공 파이는 힌두교를 믿는 가정 출신이지만 기독교도가 되고 이슬람교까지 믿게 됩니다. 이 모순적인 선택은 인간들이 서로 모순된 종교를 신봉한다는 의미입니다. 파이는 다양한 인간 마음의 보편적 초상을 인격화한 것이란 뜻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맘에 들지 않아 했던 파이가 친구들에게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름은 타인들이 인식하는 자신의 정체성인데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이 드러난 장면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가치를 타인들의 시선에서 찾는 어리석음이며 욕망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파이가 어릴적 만난 호랑이는 사유의 능력이 생기는 시점부터 내재하는 인간의 자아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모멘텀은 자아로부터 나옵니다. 때로는 자신을 지켜주지만 때로는 파괴하고 죽일 수도 있는 존재지요.
저개발 국가의 상징인 인도에서 선진국의 상징인 캐나다로의 이주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시작한 문명으로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난파하지요. 현재 시점에서 작가의 눈에 비친 우리 각자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문명발전의 여정을 따라 움직이다가 난파해 버린 처지에 있는 파이입니다.
호랑이를 만나고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과 우여곡절을 겪고 호랑이와 살아남게 됩니다. 그런데 보험회사 직원들이 그 이야기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더 풀어서 설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영화는 자기해석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이 작가는 꽤 영리하군요.
파이는 동물을 사람으로 바꿉니다. 즉 상징성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구체화한 인물이 지닌 상징성을 다시 구체화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 것입니다. 영화평론가들이 난해한 작품이라고 여기는 것은 이같은 자기해석적 수사방식을 알지 못하고 보조관념을 원관념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두 번에 걸쳐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좀 쉽게 도식화 해 보겠습니다. 영화는 동물과 인물만 연결시켜 줍니다.
호랑이 –； 파이 －－-> 인간의 자아
하이에나 –； 요리사 －－-> 먹거리를 주는 것
얼룩말 –； 불교신자 선원 －－-> 배를 움직이는 자
오랑우탄 –； 어머니 －－－－> 자신을 낳은 자
영화는 보조관념인 동물과 원관념인 인물만 연결시켜 줍니다. 그리고 독자나 관객은 다시 인물의 원관념을 추론해야 하는 것이죠. 이 작업이 없으면 꽝입니다.
이제 하이에나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고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죽이는 것이 무엇일지 2차 해석은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영상미만큼이나 작가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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