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늘 씁쓸합니다. 양산차 가운데 독일산들이 차지한 프리미엄은 "차란 이래야 한다"라는 철학이 반영된 설계와 배려가 그 근원에 자리합니다. 그래서 섀시의 강성과 검증된 내구성같은 요소들을 칭찬하지요. 물론 최근들어 차에 반영한 정신이 천박한 자본주의로 변질되기는 했지요. 사브라는 비운의 명차는 독일산 이상의 고성능과 안전중시 철학이 반영된 제품을 통해 매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시장에서는 퇴출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반면 정 반대의 마케팅으로 성공한 렉서스는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렉서스는 일본답게 구매력이 큰 소비자의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 성공한 반면, 사브는 40대 이하의 소비층이 타겟이었죠. 보이지 않는 주행성과 안전성에 열중하느라 외관과 내장재의 품질개선, 적극적 홍보와 효율적 경영등을 등한시한 사브의 실패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 얼마나 크게 좌우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대자동차는 토요타를 벤치마킹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무엇에 잘 현혹되는지를 주목했지요. 100km/h 부터 현격하게 떨어지는 고속안정성이나 차체강성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은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대우와 삼성의 몰락으로 시장을 독식한 후에 그 추세는 더 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이카 붐이 시작된지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이상적인 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바디강성과 같은 기본기에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부식방지용 코팅의 수준을 보면 회사의 속내가 빤히 보이기는 합니다. 현대자동차의 철학은 대충 만들어 많이 팔자입니다. 차량이 내구적이면 교체주기가 길어지기 때문이지요. 전 지금까지 현대차 대신 대우와 쌍용차만 이용했습니다. 불쾌해서요.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시장점유율 자체는 커다란 무기입니다. 범용성과 경제성 때문인데 아무 곳에 가더라도 부품을 구할 수 있고 대량생산으로 유지 보수 비용도 저렴합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AS, 고속성능과 안전성에서 훨씬 탁월하지만 이 범용성과 경제성의 한계를 좀체 넘지 못해 고전하고 있습니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체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하에서 그런 행태를 부도덕하다고 질타하는 것도 명분은 약합니다. 그런 부도덕함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좋은 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전환과 최소한의 지식입니다. 소비주체의 인식의 전환과 지식은 공급자를 갑의 위치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시장의 외면을 받는 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은 세금을 지불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을 구매하는 소비자이고 권력은 그 혜택을 생산하는 공급자입니다. 국가혜택의 소비자인 국민들의 이상적인 국가관이 발전하면 공급자인 권력은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투표는 권력의 구매현장입니다. 어떤 권력이 안전하고 좋은 것인지 고르려면 먼저 좋은 철학이 반영된 제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외관과 내장제의 품질, 없어도 되는 편의장치에 눈이 멀어 선택하면 예기치 않게 조우한 위급상황에서 고속주행을 하다가 사고로 이어지기 쉽상입니다.

아직도 70년대 냉전시대와 80년대 고속성장시대의 충성심이 반영된 경직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면 좀더 발전된 제품의 혜택을 입기는 불가능합니다. 이제 못살아 한이 된 세대들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고민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자신의 눈에 드는 차가 진짜 좋은 차인지 알아보려면 차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져야 하듯이 좋은 나라의 혜택을 받으려면 좋은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도 싫다면 영업사원이 추천하는 말만 듣지 말고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제품을 구매하시면 됩니다.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보고 제국주의 충돌시대를 연상하신다면 너무 발전한 차에 대해 무지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